휴식을 위한 산행
화성 태행산 백패킹
요 근래 심난함이 조금씩 쌓이다 끝내 턱끝까지 차올랐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심난함이 극에 달했을 때 극약처방으로 산행이 주는 효과는 모르핀 주사급 아닐까도 생각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심난함 가득 안고 긴 연휴를 맞았다는 것.
스팀팩이라도 한방 놔줘야 할 텐데라는 고민 끝에 1박의 백패킹 산행을 생각한다.
지난여름 향남 오토 캠핑장을 마지막으로 텐트 한번 펴질 못했기에 아쉬움도 있었고 깊은 산중에서 새로 산 책도 읽으며 일상에서 잠시 멀어져 심난함을 덜어내고자 했다.
멀리 갈 순 없으니 일단 경기도 일대를 물색해본다.
용인과 화성 둘로 좁혀지고 일단 내가 사는 화성시로 결정하고 백패킹 명소들을 살펴보니 '태행산'과 '건달산'이 검색되었다.
솔직히 말해 오토캠핑장은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야외에서 오붓한 시간을 나누기엔 딱 좋지만 경험상 나 홀로 가는 오토캠핑장은 상당히 측은함이 느껴졌다. 심지어 캠핑용품 박람회장 온 느낌도 들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보려 했다. 역시 블로그 검색과 카카오맵을 통해 살펴보니 태행산은 교통편이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건달산이 수월해 보이지만 난이도를 비교하니 태행산이 그나마 나아 보여 그리로 결정한다.
대중교통이용 시 배차간격이 1시간에 1대 꼴로 보이는 50번 마을버스가 동네 인근에서 탈 수 있었다. 다만, 가는데만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고 '청요리 정류장(37226)'에서 내려 1km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실제 차량으로 이동해보니 이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중요한 건 배낭 무게가 얼마 넣지도 않았는데 18kg을 넘어서고 있었다. 산행인지라 비화식에 그 좋아라 하는 맥주도 달랑 1캔만 넣을 정도로 간소화했음에도 무게가 저리 나가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이리저리 달리니 대략 25분 내외로 도착할 수 있었다.
찾아가야 할 곳은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 862".
블로그나 유튜브에 소개된 내용으로는 인근 주차장이 없어 갓길에 대놓고 가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싹 정비가 되었다.
이렇게 주차라인이 그려져 있었고 등산로 쪽에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마련되어 있었다.
10월 첫날이지만 조금 오르다 보면 땀에 범벅될 것이 눈에 선하니 반팔, 반바지에 완전군장하고 의기양양 오르기 시작한다.
30분 내외로 오를 수 있고 경사가 좀 있지만 크게 힘들지 않다는 의견들이 보였다. (음..언 20kg짜리 짊어지고 올라갈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등산로 입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묘지가 나오고 묘지 왼쪽으로 길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
정상이란 푯말을 보았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은근히 긴듯한 나무 계단이 전체 구간에서 3차례 나오는데 마지막 정상 인근 계단에선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거의 매일 저녁 뒷산을 한 시간여 올라 다녔음에도 이리도 벅차고 힘든 느낌은 처음 받았다. 확실히 무거운 배낭 메고 오른다는 게 보통일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등산로 옆으로 저런 돌탑들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
다니는 등산객들 수는 상당히 없어 보이는데 세월의 힘일까?
저런 돌탑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마치 미술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정상 마지막 계단이다.
태행산 정상은 말 그대로 그늘이 하나도 없어 백패킹을 하려는 분들은 이곳에서 대기했다가 올라가는 게 좋을 듯싶다.
참 가파른 나무 계단이었다.
어지간하면 쉬지 않고 오르려 했는데 저곳에서 숨 고르느라 한 5분은 배낭 메고 헐떡이다 올랐다.
정상 초입을 보는 순간 기쁨도 기쁨이지만 속으론 텐트 3~4동 자리? 라는게 순간 스치고 지나간다.
이날 기상이 초 미세먼지도 심각단계였고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니 정오가 다돼감에도 뿌연 전경이 날 반기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짊어지고 올라왔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풀러 놓고 보니 끔찍해 보인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반바지, 반팔은 신의 한 수였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과 상쾌함 뭐 그런 걸 기대했는데 없었다. 그냥 내리쬐는 햇볕과 한껏 소모한 체력에 어디론가 그늘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밀려온다.
아까 계단 오르기 전 벤치가 급 생각난다. 그렇다고 그 계단을 또 오르자니 무덤을 파는 느낌이 든다.
정상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뭔가 있으려나?
한참을 내려가며 마땅한 쉼터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양갈래로 나뉜 곳의 나무계단에서 쉬었다가 저녁 즘에 정상으로 오르기로 한다.
등산객들은 옆 길로 간간히 다니는 게 보인다. (아주 간간히...)
빵, 주먹밥, 맥주 1캔, 멸치안주, 바닥에 깔려 안 보이는 유부초밥. 이게 끝이다. 왠지 아껴 먹어야 밤에 호사스러운 밤을 보낼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사 올까? (이거 짊어지고?)
일단 빵부터 먹는다.
찌는 듯한 더위가 이곳에 잠시 머물렀더니 어느새 한기가 몸에 스며든다.
날벌레나 모기는 없었지만 가끔씩 굵직한 벌들이 근처를 배회한다. (응근히 무섭다..)
산속 미션이 또 하나 있다.
근래 '하얼빈'을 읽고 있었지만 불편한 심기 가득 담고 산속에 올라와 불굴의 투지를 다지고 싶진 않았다.
김초엽 작가의 첫 에세이라는데 구성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내 시선을 사로잡아 출간일 다음날 주문하고 새벽 배송으로 받아 들고 오게 되었다.
늘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면 파란 하늘을 보며 책을 읽고 싶었는데 이날 원 없이 눕고 앉고 서길 반복하며 자연 속 고요함 속에 한껏 집중할 수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니 근심 가득했던 마음은 어느덧 눈 녹듯 녹아내렸고 한결 기분이 좋아짐이 느껴진다. 간혹 등산객들이 한 두 명 지나다는데 대부분 계단 쪽이 아닌 옆쪽 언덕길로 다녀주니 마음 편히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먹거리 걱정이 슬슬 시작된다.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더 사 와야 되나?
4시가 넘어가니 책도 거의 다 읽어 가게 되는데 마침 집에서 호출이 온다.
들어오란다!!!!! (컥~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제 2시간 정도만 버티면 그리도 갈망하던 백패킹을 할 수 있는데! 이게 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눈물을 머금고 하산한다.
그런데,
올라갈 땐 헐떡 거리며 숨 고르기에 바빴지만 내려가는 건 또 다른 고통이 밀려온다.
무거운 배낭을 두 다리가 버텨줘야 하는데 긴 구간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진다.
쉽게 내려갈 거라 생각했는데 올라가는 것 못지않게 땀이 흐르고 다리는 덜덜 떨려오고 거의 다 내려왔을 땐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굳어지는게 느껴진다.
행여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했으면 큰 일날뻔 했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그렇게 산행을 마무리한다.
그래도, 목젖까지 차올랐던 불편한 심기들이 극한의 고통과 평상시 늘 하고 싶었던 자연 속 독서를 통해 절반은 떨쳐버리고 올 수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책들 중에 '위로'와 관련된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만큼 각박해진 삶 속에 위로받으며 상처를 치료하고 싶은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다.
삶의 굴레에 갇혀 마음으로만 삭히며 자책과 반성 그리고 나를 향한 응원보단 가끔 어딘가로 떠나 잠시 잊어버리는 것도 나를 위한 위로인 것 같다.
일단 좀 쉬자고.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기를 ... - <참 괜찮은 태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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