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좋아하고 문구 덕후라면 흠뻑 빠질만한 소설이었다.
츠바키 문구점
아메미야 하코토라는 이름은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녀가 철들 무렵 다들 포포 (비둘기 울음소리)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처음 붓을 들은 건 여섯 살 때였고, 배냇머리로 만든 붓을 사용하였다.
포포를 키워준 할머니를 그녀는 '선대(先代)'라고 불렀다.
선대는 문구점을 운영하며 대필을 해오고 있었고 포포에게 어릴 적부터 붓글씨를 가르치며 엄하게 그녀를 키워 왔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뒤늦은 반항기가 찾아온 후로 선대와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심지어 반항기 가득했던 그녀는 일부러 불량소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그녀는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곁을 떠나지만, 선대가 죽은 후 선대의 가업을 물려받게 된다.
여름, 가을, 겨울, 봄
책은 여름, 가을, 겨울, 봄의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야기는 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에서 시작된다. 선대의 츠바키 문구점을 물려받은 포포는 대필이라는 가업도 이어가게 된다.
원숭이의 죽음에 대한 조문 편지, 십오 년간 함께한 부부의 이혼 보고의 본격적인 대필 의뢰를 받으며 이를 해결해나간다. 이때 포포의 과거사도 소개된다.
그녀를 억압했던 선대의 교육과 둘의 관계가 여름을 의미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마치 사건을 풀어 가듯 각 계절 별로 두세 개의 대필 의뢰와 마을 주민들과의 소박한 일상이 잘 그려지고 있다.
옛 여인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생신 축하 카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절연 편지 등 다양한 의뢰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포포 또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이 주는 섬세함
책의 백미라면 의뢰받은 대필에 대한 결과물 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의뢰된 사연을 소개하고 그 결과로 넘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필 내용까지 상세히 보여주기에 작가의 섬세하고 필력이 느껴졌다.
인터넷 보급은 이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라는 플랫폼의 대중화를 가져왔고 지금은 수기로 쓴 편지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온라인이나 누군가에게 글을 주고받고자 한다면 작가가 보여주는 대필의 결과물들은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도 같다.
덕분에 십구 페이지에 달하는 책 정리와 함께 편지 내용을 필사하며 반나절의 시간을 보냈다. 절대 아까운 시간은 아니었음이 느껴진다.
문득 내게 저런 의뢰가 들어오면 어떻게 작성했을까 잠시 고민도 해본다.
책의 부록으로는 책에 소개된 대필의 내용이 실제 붓이나 펜으로 멋지게 써진 작품들을 싣고 있어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울러 문구 덕후를 위한 길지 않은 문구류 소개들은 근래 몽블랑에 꽂혀 있는 나에게 적지 않게 자극을 주었다.
의미 없는 계절은 없다
"우리의 관계에도 의미 없는 계절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츠바키 문구점' 중에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한 줄 메시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포포의 편지에 그녀의 생각을 그려 내고 있고 책의 사계절이 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잔잔하게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가는 듯싶었지만 봄에 다다라 한껏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마치며,
필사 등의 글쓰기를 좋아하고, 문구류를 좋아한다면 분명 책에 흠뻑 빠질 만한 세심함이 곳곳에 녹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오디오북 청취 후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디오북에서의 성우분의 사실적인 연기는 책에서 느끼는 감동을 한층 더 끌어올려 준다.
포포의 성장기는 우리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달해 주는 이야기이기에 난 이 책을 추천해 본다.
책 속의 인상 깊은 문장
그동안 시든 수국은 초라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 시든 모습이 또 그렇게 청초하고 아름답더군요.
그리고 꽃뿐만 아니라. 잎도 가지도 뿌리도 벌레 먹은 흔적조차도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우리의 관계에도 의미 없는 계절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츠바키 문구점' 중에서
#츠바키문구점 #오가와이토 #일본소설
#서예 #대필 #감동글귀 #밀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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